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사적인 영화관의 에디터 챙구입니다. 지난 금요일, 연휴가 시작되던 날이었어요. 추석을 맞이하여 본가로 갈 준비를 하던 중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영국 왕실과 문화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그였기에. 많은 이들이 그녀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에 맞춰 이번 호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등장하는 영화를 다뤄 보고자 합니다. 또 마침 지난 19호에서 다이애나 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더욱 좋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나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하는 <더 퀸>(2006)은 다이애나 비 사망 사건에 대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점과 태도를 보여주는 영화이니, 더욱 흥미롭게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감독 : 스티븐 프리어스
• 출연 : 헬렌 미렌, 마이클 쉰 등
• 장르 : 전기, 드라마
• 러닝 타임 : 1시간 43분
• 스트리밍 : 시즌
• 수상 :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각본상
• 관람객 평점 ⭐7.75

1. 엘리자베스 2세 이야기
2. 침묵했던 여왕의 심정은?
3. 여왕의 품격, 헬렌 미렌

감히 그녀를 현대사를 몸소 겪은 분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는 사실 힘든 말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공주 시절, 운전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까지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즉위할 때에, 삶이 길든 짧든 평생토록 국민을 섬기는 데 헌신할 것임을 약속하였는데요. 실제로 사망 이틀 전까지도 신임 총리를 임명하고 면담하는 등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였습니다. 그녀는 윈스턴 처칠부터, 사망 이틀 전에 임명한 리즈 트러스까지 총 15명의 총리와 함께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역사의 증인이자 영국 왕실의 대들보로서 자리를 지켰던 그녀지만, 1997년 다이애나 비 사망 사건으로 인해 큰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침묵했던 여왕의 심정은?

1997년 8월 31일 새벽, 다이애나 비는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다가 일어난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다이애나 비와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 보러 가기 → 19호 <스펜서>)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다이애나 비의 사망 소식은 수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영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빌 클린턴, 넬슨 만델라 등 전 세계 지도자들까지 애도했어요. 그런데 이 슬픔에 동조하지 않은 유일한 집단이 있었으니, 바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한 영국 왕실이었답니다.

여왕은 전통과 보수파의 상징이자 아이콘이었는데요. 그래서 이혼 후 왕실을 떠난 다이애나 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민간인 취급합니다. 그래서 추모의 물결에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별장에서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다이애나 비의 사망은 국가적인 일, 또는 왕실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여왕은 얼굴을 보이고 다이애나 비에 대한 애도를 표하라는 국민과 개혁파들의 요구에도 왕실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묵묵부답이었어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누구보다 복잡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취임한 개혁파의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가 왕세자비를 애도하는 성명문을 발표하여 여론에서 완전히 득세하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언론에서는 다이애나 비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왕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쏟아냅니다. 결국 왕실에 대한 호감도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왕실 폐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게 됩니다.

군주가 군주로서 통치하지 못하는 시대에서, 그렇지만 전통을 수호해야 하는 자리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와 국민에게 그녀는 어떤 대답을 주었을까요. 현대 시대의 국왕으로서 고뇌와 선택이 <더 퀸>에 잘 담겨 있습니다.

여왕의 품격, 헬렌 미렌

이런 여왕의 깊은 내면을 표현한 배우가 바로 헬렌 미렌입니다. 헬렌 미렌은 1966년에 데뷔하여 연기 경력만 50년이 넘는 영국의 대배우입니다. 그녀의 위상은 바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2회 수상에서 알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은 3번 받은 사람이 없이 2회 수상이 최고 기록이고, 그마저도 전 세계에서 단 4명뿐이랍니다. 그중 한 명이 헬렌 미렌이에요.

그녀는 <더 퀸>에서의 엘리자베스 2세 역할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같은 해에 TV 시리즈 <엘리자베스 1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역할을 맡아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입니다. 근엄하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한 여왕 역할에서부터 그녀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막달레나 쇼’ 역할을 맡아 멋진 액션을 소화하기도 했어요. 또, 나치에 의해 빼앗긴 구스타브 클림트 그림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 <우먼 인 골드>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사적인 영화관 3호에서 다루기도 했어요.

이런 그녀의 연기 내공은 영화의 고증 정도를 한 층 더 올려주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패션, 헤어스타일과 같은 외향은 물론이고 억양과 걸음걸이 등 세밀한 부분까지 매우 비슷하게 연기했기 때문이에요.

실제 엘리자베스 2세의 자료화면을 그대로 복사해놓은 듯한 연기가 아직도 인상 깊네요. 다음에는 헬렌 미렌이 연기한 엘리자베스 1세를 봐보려고 합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 <헨리 4세> 2막 중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시작합니다.

“왕관을 쓴 자는 편히 쉴 날이 없나니”

저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왕관의 무게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어떻게 견디는지, 그리고 견뎌왔는지를 알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여왕을 기억하며, 2022년 9월 16일.

Farewell, THE QU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