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사적인 영화관의 에디터 챙구입니다. 기분 좋은 꽃이 피는 4월이 찾아왔습니다. 피어나는 꽃들을 보니 이제 완연한 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오늘은 1948년 꽃 피는 봄 제주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다룬 영화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지슬>(2013)은 제주 4.3사건 당시 희생당한 제주도민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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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슬> (2013)
- 감독 : 오멸
- 출연 :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등
- 장르 : 드라마, 역사
- 러닝 타임 : 1시간 48분
- 수상
- 제29회 선댄스 영화제 월드 드라마 심사위원 대상
-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CGV 무비꼴라주상,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 감독상
- 네이버 평점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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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출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실제 제주 출신 배우들이 등장하여 제주 방언으로 연기하는 이 영화는 흑백으로 진행되며 1948년 당시 제주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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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영화제는 무엇인가요?
선댄스 영화제는 저예산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다루는 미국의 영화제로, 독립영화 축제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어요. 지난해 윤여정 배우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미나리>(2020)가 기억나시나요? <미나리>는 선댄스 영화제 미국 극영화 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슬>은 우리나라 영화 최초로 월드 드라마(국제 극영화) 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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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부터는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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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미디어에 여러 차례 등장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다른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비해 제주 4.3사건은 잘 다뤄지지 않아, 제주 4.3사건이 낯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 4.3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영화를 보면 훨씬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먼저 4.3사건에 대해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제주 4.3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미군정 시기*에, 1948년 4월 3일부터 이듬해까지 있었던 사건으로, 사건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많이 희생되었는데요. 그 규모는 전체 제주도민의 약 1/10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군정 시기 :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해방된 후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우리는 미군의 임시 통치 정부인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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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포인트! - 당시 제주도의 성향
4.3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이전에, 당시 제주도의 기본적인 성향은 어땠을까요? 제주도는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유배지 등으로 쓰이며 육지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들은 육지 권력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요. 일제강점기에도 육지 출신 경찰들이 횡포를 부렸으며, 해방 이후에도 미군정은 제주도의 식량(쌀)문제를 등한시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은 육지 권력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제주도에는 남로당과 같은 좌익 세력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동포들이 다수 귀환하여 거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주도는 다른 곳에 비해 좌파적 색채가 짙었던 지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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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에 열린 3.1운동 기념행사에서 기마경찰이 실수로 어린아이를 다치게 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일에 분노한 민중들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자 이에 대항하여 경찰이 발포했고, 그 자리에서 제주도민 6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분노한 도민들은 파업을 단행했습니다. 열흘 정도 파업이 지속되었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미군정은 강경책을 펼쳤습니다. 미군정은 제주 출신 도지사와 경찰을 해임시켰고, 육지 출신 도지사와 경찰을 임명하였습니다. 게다가 사건을 수습하는데 극우반공세력이었던 서북청년당이 경찰의 보조를 자원하면서 제주도민들을 크게 탄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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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군정의 강경책에 분노한 남로당-제주도당 사람 약 350명이 무장을 하고 4월 3일에 주요 관공서와 우익 민간단체를 습격하여 소요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제주 4.3사건의 명칭은 이날로부터 비롯되었어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미군정의 9연대가 제주도로 파견되었는데요, 연대장 김익렬은 제주도민들과 평화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며 평화 협상을 도모했습니다.
그런데 평화 협상이 체결된 지 사흘 만인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서북청년당 등의 극우청년 30여 명이 오라리 연미마을에 들어와 10여 채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사건을 미군정에서는 제주도민 유격대의 소행으로 오해했고, 탄압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평화 협상도 파기되었어요.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 입장에서 제주도는 반동분자들이 존재하는 위험한 지역으로 간주되었는데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48년 10월 제주도 경비 사령부가 설치되었고 본격적으로 토벌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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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중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한 마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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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1월에는 소개령을 내려 해안가로부터 5km 밖에 있는 중산간 지대에 거주를 금지했습니다. 이곳에 살던 민간인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강제로 이주해야 했으며,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들은 동굴같은 곳에 은신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초토화 작전을 시행하여 중산간 지대에서 발견된 사람은 모두 유격대로 간주하며 대량 학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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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위한 제사
<지슬>은 이런 역사적 과정 속에서 소개령이 발표된 뒤, 숨어지내다 희생당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습니다. 영화에는 미군정도, 이승만 정부도, 서북청년회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당시 제주도에 있었던 군인들과 제주도민들만 조명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요소는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전달한다기보다는 당시 희생되었던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영화 속 제주도민들은 목숨을 걸고 동굴로 피신했으면서도, 그 안에서 마을에 두고 온 돼지 밥 줄 걱정을 하고, 먹을 게 없냐는 등 순박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미군정이 어떻고, 정부가 어떻고 하는 등의 이야기는 나누지 않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이면 (동굴에서) 나갈 텐데 뭐가 걱정이냐고 하며 다시 일상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모습은 당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잘 알지 못했던 민중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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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는 당시 제주도에 있었던 군인에 대해서도 애도의 시선을 보냅니다. 제주도로 파견되었던 모든 군인들이 원해서 이런 일에 가담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물론 아무 잘못 없는 마을 주민들을 그저 “나는 빨갱이가 싫다.”라며 학살하는 광기 어린 군인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여기 있으면 죄 없는 사람도 죽여야 돼”라며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하고 상사에게 대드는 군인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역사보다는 당시 정세에 희생된 사람들에 집중했기 때문일까요, 영화는 제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사 과정인 ‘신위, 신묘, 음복, 소지’라는 소제목으로 챕터가 구분되어 있고, 영화의 첫 장면은 군인에 의해 어질러진 집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요. 여기서도 바닥에 나뒹구는 제기들이 클로즈업 되면서 제사가 시작됨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역시 소제목 ‘소지’에 걸맞게 지방(紙榜)을 태우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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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의 소제목 - 제사의 과정
- 신위 : 영혼을 모셔 앉히다
- 신묘 : 영혼이 머무는 곳
- 음복 : 영혼(귀신)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 소지 : 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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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중
제기 앞에서 희생자의 지방이 타오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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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인 ‘지슬’은 제주 방언으로 감자를 뜻하는데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감자는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군인들을 피해 동굴로 도망간 마을 주민들은 함께 감자를 나눠먹으며 허기를 달래기도 하고, 동굴로 피신 가기 전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챙겨주기도 하죠. 또,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군인을 위해 그와 뜻을 같이하는 다른 군인이 감자나 훔쳐줄 테니 배가 고파도 조금만 참으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감자 역시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지슬>은 제주를 위한 오늘날 사람들의 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념, 정세와 관계없이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인 것이죠. 제주 4.3 평화제단 기념사업팀 팀장 조정희 씨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생존자와 유가족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워낙 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2000년대에 태어난 제주 사람이라도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4.3사건과 엮여 있을 정도다. 사건을 겪은 이가 여전히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면 마땅히 그들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제주 4.3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각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여러분도 <지슬>을 통해 제주 4.3 사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떠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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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은 전공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언급해주신 덕에 알게된 영화인데요. 보는 내내 수업 시간에 배웠던 내용과 더불어 5년전 쯤 제주도를 가서 방문했던 제주 4.3평화기념관이 떠올랐습니다. 비 오는 날 찾았던 평화기념관은 더 조용하고 적막해서 4.3사건의 아픔이 더 잘 다가왔던 것 같아요. 평화기념관에서는 제주 4.3사건과 전후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어서,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보세요. 즐거운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던 제주도에 대해서 또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오늘도 긴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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